“소금이 아닌 파도와 시간이 만든 하얀 두부의 비밀”
오늘은 지역 특산물의 비밀 레시피 다섯번째로 초당두부를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초당두부의 기원: 바닷물로 응고시킨 강릉만의 전통
“강릉 바닷가의 집에서 피어난 두부 한 모”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은 단순한 지명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두부 역사에서 독자적인 브랜드처럼 인식되는,
‘초당두부’라는 고유한 방식의 탄생지이기 때문입니다.
‘초당’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초당 허엽(許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의 집안에서는 콩을 갈아 만든 두유를 동해 바닷물로 응고시켜 만든 두부를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방식이 입소문을 타며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고,
이후 강릉에서 두부를 만들 때면 자연스럽게 “초당식”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초당두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간수(염화마그네슘) 대신 바닷물을 사용하는 응고 방식입니다.
이로 인해 생기는 차이는 단순히 재료의 차원이 아닙니다.
질감은 더 부드럽고 촉촉하고 단맛과 고소함이 도드라지며
입에 넣었을 때 ‘짠맛이 없는 깨끗한 뒷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초당두부는 오직 강릉 앞바다의 바닷물로 만들었을 때 진정한 ‘초당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현지 장인들은 “간수를 넣으면 그건 초당두부가 아니다”라고 말하죠.
간수 vs 바닷물 – 응고제의 차이가 만드는 결정적 맛
“소금물이 아니라 바닷물이 만든 차이”
일반적인 두부는 간수 또는 황산칼슘 같은 응고제를 사용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정제된 화학염 또는 산업용 미네랄 성분이며,
콩 단백질을 빠르고 단단하게 응고시키는 데에 탁월하죠.
하지만 초당두부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거친 바닷물을 걸러 사용하며, 콩과 바다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지향합니다.
🍶 간수 두부의 특징
응고력이 강해 짧은 시간에 단단한 형태를 갖춤
고형물 비율이 높고 탄력이 있음
표면이 매끄럽고 절단이 용이
간혹 쌉쌀하거나 금속성 뒷맛이 남기도 함
보존성이 비교적 좋음
🌊 바닷물 두부(초당두부)의 특징
응고가 천천히 이뤄져 질감이 몹시 부드러움
고형분이 적어 촉촉하고 입 안에서 쉽게 풀어짐
단맛과 고소함이 더 잘 살아남
수분이 많아 보관에는 불리하지만, 그만큼 신선도 중심의 식품
일반 간수 두부에 비해 짠맛이 거의 없음
✅ 바닷물은 단순한 소금물이 아닙니다.
→ 마그네슘, 칼슘, 칼륨, 나트륨, 황산 등 다양한 미네랄이 복합적으로 존재합니다.
→ 이들이 함께 콩 단백질을 부드럽게 결합시키며, 보다 섬세한 맛을 형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초당두부를 처음 맛본 이들은 “이게 두부 맞아?”라는 감탄사를 내뱉곤 합니다.
그 이유는 뚜렷합니다. 뒷맛에 이물감이 없고, 목 넘김이 물처럼 부드럽기 때문이죠.
초당두부 만들기: 바다의 시간과 장인의 손길
“콩, 바닷물, 불 – 단 세 가지로 완성된 순백”
초당두부는 단순히 재료만 바다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 제조 과정 전체에 자연의 리듬과 느린 손맛이 녹아 있습니다.
수작업 중심의 전통 방식은 대량생산에는 불리하지만,
그만큼 개별 두부마다 ‘결’이 살아있고 고유한 풍미가 존재합니다.
🫘 초당두부 전통 제조법 (요약)
① 콩 불리기 (12~16시간)
강릉에서는 보통 강원도산 백태를 사용
물에 12시간 이상 충분히 불림
겨울에는 미지근한 물, 여름엔 찬물 사용해 콩 향 유지
② 맷돌에 곱게 갈기
불린 콩을 맷돌식 제분기로 갈아 생콩물을 만듦
체에 걸러 ‘맑은 두유’만 추출
③ 끓이기 (80~90℃)
두유를 끓이되, 끓어오르기 전 불을 줄여 부드럽게 우유처럼 익힘
이 과정에서 콩 비린내 제거와 단백질 활성화가 일어남
④ 바닷물 응고
깨끗한 동해 바닷물을 40~50℃로 데운 후, 두유에 천천히 부음
이때 ‘간 맞추기’가 핵심 – 너무 많이 넣으면 짜고 뻣뻣해짐
덩어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더 이상 젓지 않고 천으로 덮어둠
⑤ 숙성 및 몰드에 담기
약 20~30분간 응고 상태 유지 후,
두부틀에 넣고 천으로 감싸 수분만 자연스럽게 제거
무게를 얹어 가볍게 누르되, 지나치게 눌러서는 안 됨
꺼내면 촉촉하고 하얀 순백색 두부가 완성
💡 초당두부, 이렇게 먹으면 진짜다
그대로 먹기 (생두부 스타일)
→ 초당두부는 양념 없이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 집간장 1~2방울과 깨소금 정도만 살짝 곁들여도 충분
두부국, 두부전골
→ 일반 두부보다 수분 함량이 높아 전골 국물에 깊은 맛을 더함
차갑게 즐기기
→ 여름에는 냉장고에 식혀두었다가 냉두부처럼 먹으면 최고의 별미
초당두부는 결국 간수냐, 바닷물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이 식재료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빠른 응고와 유통 효율을 택한 현대 방식과 달리,
초당두부는 ‘시간과 기다림’으로 응고된 두부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강릉의 바람, 파도,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다음에 강릉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초당동 두부골목을 찾아
뜨끈한 순두부 한 그릇 또는 생두부 한 모를 맛보길 추천합니다.
그 하얀 결 속에서 바다가 만든 음식이란 게 무엇인지 느끼게 될 거예요.